김형욱의 칼럼언어
해부학(anatomy)은 뭐고, 기능해부학(functional anatomy)은 무엇인가요. 현장에서 수많은 전문가들이 기능해부학(functional anatomy)적인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강조하지만, 과연 그 이야기들의 관점은 무엇을 표현하기 위함인가요. 강력한 학자들의 이론을, 아니면 몸의 비밀이 드러나 있는 듯한 책의 내용을, 그것도 아니라면 더 잘 움직이기 위해 살아왔던 개인적인 경험들을 내포하기 위해 강조하는 이야기일까요.
사람들은 저마다 본인의 언어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아마도 그 언어의 연유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것을 파고 들어가 봐야 막막함이 그지없기도 하겠지만, 사회적으로 지켜지고 있는 언어들이 개인 고유의, 혹은 사회적으로 쓰이기 이전에 태동되었던 언어 고유의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게 만들기 때문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학문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할 테니까요.
그런데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꼭 해야 될 이야기지만, 그 이상으로 어렵게 들릴지도 모를 개인적인 염려 때문입니다.
기능해부학(functional anatomy)의 첫 번째 관점, 해부학(anatomy)은 '몸(body)'을 가진 모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전의 포스팅에서 잠깐 언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핵심은, 해부학(anatomy)은 우리 인간의 몸(human body)만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전적인 정의로는 인간의 몸(human body), 그리고 좀 더 나아간다면 인간이라는 동물 이외의 다른 생명체까지도 도달합니다. 하지만 진정 해부학(anatomy)은 생명하는 것과 생명하지 않은 것까지도 포함하는 학문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입장에서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인간이 정립한 학문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의 관점에서는 인간이란 지구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일부분일 뿐, 인간 이외의 그 나머지 또한 지구를 이루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구를 알고 싶다면, 지구를 이루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 당연합니다. 지구에는 우리가 살아 숨 쉴 수 있게 하는 대기와 다양한 풀과 흙, 그리고 셀 수 없이 무수히 많은 생명체와 물질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들 중 우리는 무언가에 꽂혀 그중 하나만에 유독 관심을 가질 수도 있으며, 혹은 살아가면서 특정한 기회를 맞이하면서 관심의 대상이 바뀌어가기도 합니다. 그 과정이 어찌 됐든, 이러한 전 과정은 한 사람의 인생이 될 것이고, 그 인생의 길이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대한 알아감을 의미하는 것은 여지없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이야기해볼까요. 인간은 지구 환경에 적응(environment adaptation)합니다. 그래서 지구 위치에 따라 인간뿐만 아닌 생명체의 모습들은 저마다 다릅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다른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구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생성되어있는 환경(environment)의 차이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환경에 적응(environment adaptation)하는 것은 단순 인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존재까지 어떻게 적응(adaptation)하고 적응(adaptation)되어왔는지를 함께 이해한다면,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의 적응(adaptation)의 의미와 함께, 인간인 것과 인간 아닌 것 사이의 차이 또한 구분할 수 있으니 지구에 있는 것이라면 그 모두를 해부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능해부학(functional anatomy)적인 관점이란, 인간의 몸(human body)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지닌 생명하는 것과, 또 몸을 지녔지만 생명하지 않는 것 모두입니다. 결국, 몸을 지니기만 했다면 그것은 해부학(anatomy)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기능해부학(functional anatomy)의 두 번째 관점, 해부학(anatomy은 '그것'을 알고 싶을 때 발현된다.
세상 사람 누구라도 원하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이기도 하고, 하나가 아니기도 합니다. 또 그것은 조금 강력하기도 하고, 많이 강력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대상을 알고 싶을수록 발현된다는 것입니다. 알고 싶을수록 발현된다니, 어쩌면 좋아하는 대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해부학(anatomy의 사전적 정의는, 그것의 구조(structure)를 파악하는 학문입니다. 이것을 현실적인 의미로 다시 써보자면, 그것의 형상을 알기 위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상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모양새(visible form)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부의 기질(internal disposition)과 함께, 그것의 존재가 사유할 수 있는 것이라면 감각(sense)이나 감정(feeling)과 같은 것 또한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내적인 것까지 저절로 알고 싶어지는 마음과 같이 말입니다.
해부학(anatomy)이 이럴진대, 여기에 기능해부학(functional anatomy)이라면 어떤가요. 저는 현장에서 기능해부학(functional anatomy)을 눈에 보이지 않는 해부학(anatomy)으로 표현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좀 더 기질적인 것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해부학(anatomy)을 더 잘 알고 싶다면, 기능해부학(functional anatomy)을 더 잘 알고 싶다면, 그것의 여부는 관심에 달린 것입니다. 당신이 무언가에 강렬하게 관심을 가질수록, 그것으로부터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함의 강도입니다. 참,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해부학(anatomy)은 다른 학문들을 넘어서는 의미들을 지니고 있네요.
기능해부학(functional anatomy)의 세 번째 관점, 해부학(anatomy)은 이것과 저것이다.
저는 앞서 해부학(anatomy)이란, 그것의 형상을 알기 위한 학문이라 정의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좀 더 본질적인 해부학(anatomy)의 정의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과 '저것'입니다. 제가 지금 표현한 이것이 바로 해부학의 참뜻입니다. 해부학(anatomy)은 단어의 의미상 나누고 자르는 등의 어원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원적 의미에서 살펴볼 때, 하나의 것을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기 위해, 그 하나의 것을 '이것'과 '저것'으로 구분하게 됩니다. 이때 구분의 기준은 인간이 사고한 영역 아래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인간의 편의적 개념입니다. 특정한 대상을 다른 대상과 구분하기 위해 '이것'과 '저것'으로 구분하는 것이고, 그리고 하나의 특정한 대상에 있어서도 그를 이루는 형상 알기 위해서도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세상 모든 것이 인간의 관점에서는 해부된 것입니다. '사과'란 무엇인가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열매 중, 우리 머릿속에 있는 떠오르는 그 사과만이 '사과'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사과'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사과가 아닌 다른 열매와는 뚜렷하게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사과'만 생각해도 그러한데, 다른 물질들은 또 어떨까요. 사과를 '사과'라고 지칭하고 약속하지 않았다면, 우리 인간들은 다른 인간들과 살아감에 있어 많은 혼동이 오고 갔을 겁니다. 해부학(anatomy)은 이렇게 '이것'과 '저것'입니다. '이것'과 '저것'이 없었다면, 얼마나 우리가 삶을 영위하기가 힘들었을지, 좀처럼 가늠하기도 힘듭니다.
기능해부학(functional anatomy)의 네 번째 관점, 해부학(anatomy)은 전체가 아닌 것을 '전체'하는 것이다.
여태까지 해부학(anatomy)은 형상화시키는 것, 그 과정에서 구체화가 필요하고, 이것이 결국에는 특별한 기준 아래 '이것'과 '저것'으로 구분되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결국 나눈다는 것은 그것의 관심으로부터 비롯되지만, 이렇게 해야만 그것을 더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끝난다면, 해부학이 완성되었다고 보기 힘듭니다. 해부학(anatomy)은 가능할지는 몰라도, 기능해부학(functional anatomy)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기능해부학(functional anatomy)의 네 번째 관점은, 전체가 아닌 것을 전체로 하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그것이 물질이든, 물질이 아닌 감정이든 간에), 일부분만 파고들어서는 그 실체를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인체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몸을 이루는 아주 작은 단위(unit)까지 관찰할 수 있습니다. 조직(tissue)을 넘어서 세포(cell)의 단위(unit)까지 말입니다. 하지만 조직(tissue)과 세포(cell)를 알았다고, 인체에 대해서 모두 알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한데 모여 인체를 이룰 때, 그들이 개별적으로 기능하는 것과는 다른 결과들이 인체에서 발생됩니다. 그러니 실체화된 특정한 대상을 알기 위해서 아주 작은 부분까지 파고 들어갔다면, 그것을 이해하고 다시 되돌아와서 또 한 번 이해해야 합니다. 해부학(anatomy)은 점점 더 파고 들어가는 것이지만, 이렇게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면 전체를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아닌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전체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한 번만으로는 부족하다면, 전체에서 다시 전체 아닌 것으로, 그리고 다시 전체 아닌 것에서 전체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되풀이되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 과정이 되풀이될수록, 우리가 알고자 했던 그것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볼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기능해부학(functional anatomy)의 마지막 관점, 해부학(anatomy)은 표현을 통해 '관계'하는 것이다.
결국, 기능해부학(functional anatomy)을 통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인간을, 사물을, 그리고 그 이외의 것들을 더 잘 이해함으로 인해서, 그것들과 더 잘 관계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우주적인 관점에서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지구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구분할 줄 알게 되었을 때, 그것들과 더불어서 우리 인간 또한 어떻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게 될지를 알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해부학(anatomy)을 통해 우리가 가진 것을 표현해야 합니다. 현장에서도 몸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강조하지만, 몸은 우리가 지닌 것 중 가장 표면적인 실체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몸 내부를 표현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서 몸 내부의 것들을 (여기에 마음까지 포함하여) 몸을 활용하여, 몸 외부로 관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양소(nutrient)를 섭취(ingestion)하는 것도 음식(food)과 관계하는 것이고, 자갈길을 걷는 것도 바닥과 관계하는 것이고, 심지어 숨을 쉬는 것(breathing)도 대기(atmosphere) 중의 산소(oxygen)와 관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몸으로써 무언가와 관계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몸 내면의 것들을 몸 외면으로 더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관점은 표현을 통한 관계인 것입니다. 게다가 해부학(anatomy)은 아주 심도 있는 학문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현실적으로 실용화될 수 없다면, 그 배움의 의의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더욱 세상과 관계하기 위한 해부학(anatomy)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기능해부학(functional anatomy)이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김형욱이 읽어주는 '기능해부학(functional anatomy)의 관점, 우리는 해부하지 않은 게 없다.'
네, 맞습니다. 알고 보면 이렇게 우리들은 어느 하나 해부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그래서 해부학(anatomy)을 일각에서는, 인류 존재의 시작과 동시에 함께 시작된 학문이라 일컫는 것입니다.
제가 제시한 모든 것이 해부학(anatomy)이고, 좀 더 기능해부학(functional anatomy)입니다. 만약 당신이 기능해부학(functional anatomy) 관점을 절실히 얻고 싶다면, 제가 언급한 다섯 가지의 관점으로 인간은 물론이고, 사물을 바라봐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용들을 읽어왔다면 느꼈겠지만, 해부학(anatomy)에는 이렇게나 철학적인 의미들이 숨어있습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일러주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어쩌면 제가 먼저 강조한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당신이 만약 인간의 몸(human body)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몸에 대해 관심을 지닌다면, 결국에는 알게 될 것들이었습니다. 결국에는 알게 될 것들이지만, 우리는 매번 표면적인 해부학(anatomy)의 이야기들만 보고 듣고 있으니, 이렇게나마 그동안 제가 보고 느꼈던 경험들을 살려 서술했을 뿐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해부학(anatomy)을 해부학(anatomy)으로만 남겨두지 않기를 바랍니다. 해부학(anatomy)은 사람을 표현하고 있으니, 가장 사람에게 이해되기 쉬운 학문이며, 사람이 사람을 이해함으로 '나'와 '남'까지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학문입니다. 저는 현장에서 운동전문가들에게 해부학(anatomy)을 가르치고 있지만, 인류의 해부학(anatomy)은 단순히 운동만을 위해서 연구했던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이렇게나마 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해부하지 않은 게 없었던 것만큼, 해부학(anatomy)은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학문임을,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가장 잘 이해시켜줄 학문임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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